감자캐는 교육감
공자는 자신의 행실이 자칫 제자들에게 해가 될까 싶어 보이는 곳이나 보이지 않는 곳이나 올곧은 행실을 평상시처럼 삼가하여 제자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았던 선인(先人)이다. 예수와 석가의 삶도 자신의 행동을 보고 따르는 제자들이 항상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 평생을 사랑과 고행의 본(本)을 보이는데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전 지자체의 교육관계 수장이라는 사람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교육감 왈(曰), "저 지금 감자 캐다가 왔습니다. 이제 감자를 캐고 나면 그 자리에 들깨를 심어야 하는데 오늘 행사때문에 심다말고 왔습니다."
그럼 선생님들과 학생들도 들판과 산에 가서 채소를 가꾸며 땅이 주는 소중함을 깨달으며 실천하라는 무언의 가르침인가? 학교의 실정은 문제점 숨기기에 여념이 없고 속이 썩어가고 있는데 정작 교육감과 교장들은 텃밭에서 푸성귀나 가꾸며 자연을 벗삼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회적 대통합, 장애우와 다문화 가정, 빈민들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초등학교에서는 이들에게 그야말로 특별 대우를 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미술치료와 심리치료를 받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서 특수교육 실무사를 곁에 붙여주고 정규수업시간에 엉뚱한 행동을 자제하도록 하고 있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거의 나아지는 것이 없다.
초등학교에서 분류한 특수아동과 다문화가정, 편모가정, 조부모가정, 빈민 가정의 아이들이 올바른 가정교육을 받을리가 만무하다. 학교에서 이들의 상식을 벗어난 행동때문에 어린 아이들은 상처를 받고 심지어 학교에 나가기 싫다는 하소연까지 한다.
초등학교 특수교육 대상 아이들의 횡포와 학교반응
이들은 횡포는 어린아이의 수준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충격적인 행동으로 또 다른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선량한 어린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생전 듣지 못할 욕을 선생님이 있는 자리에서 내뱉는가 하면, 사람의 생식기를 칭하는 말을 서슴치않고 초등학교 1~3학년 아이들에게 자랑하듯 욕하고,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의 엉덩이와 가슴 신체부위를 만지고 지나가면서 "좁아서 그랬다고." 핑게를 대며 비아냥 거린다. 혹여 그런 사실을 선생님께 고자질이라도 할라치면 여지없이 딱풀이 날라오고, 주먹이 날라와서 주눅이 든 보통의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당하고 사는 것이 현재 초등학교의 현실이다.
사회적 약자로 보호받는 초등학교의 아이들은 물도 안나온답니까? 씻지도 않고 학교에 등교해 주위의 어린이들에게 불쾌감을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아이들의 책상에 코딱지를 파서 묻히는 행동까지 이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다.
담임 선생님들은 이미 포기 상태다. 아무런 쓸모도 없는 특수아동 진단을 해놓고 특수아동으로 분류해 놓아야 헛수고다. 어차피 학교내에 존재하고 있으며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자신의 불만을 그대로 표출하는 이들의 행동은 무소불휘의 폭력이다. 담당하는 선생님과 방과후 강사들은 신경쇄약으로 정신과 진단은 물론 불면증까지 호소하며 이 아이들 지도에 어려움을 표출하고 있지만 학교 책임자는 그저 "반복해서 교육시키고 타이르세요! 그게 교육의 힘입니다."라고 말하거나 지도를 소흘히 한 선생님의 탓으로 돌려서 내부적으로 썩어가는 교육현실을 감추기에 하루 하루가 힘들고 버겁다.
"왜 특수교육 실무자를 배치해 놓고 그들이 학교의 행정업무를 해야 하느냐?"고 묻자 정규수업의 담임 선생님의 원할한 수업진행을 위해서 배치해 놓고 있으며 정규수업 시간 이후에는 별다른 일 없이 학교 행정업무를 보조하고 있단다. 그럼 특수아동이 정규수업만 특수 보호대상이고 방과후에는 정상적이고 착한 아이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인가? 특수아는 정규수업이나 방과후 활동시간에도 똑같이 특수보호대상 아이로 특수교육 실무자가 집에 귀가할 때까지 전문적인 치료와 관련교육을 병행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실무자는 어쩔 수 없단다. 방과후에 주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대책이 있냐는 질문에도 묵묵부답이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사회적 대통합이라는 원칙하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만 합니다. 그 사회적 약자라는 아이들의 폭력적인 행동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 2학년의 어린 자녀들은 한시도 마음 편하게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대통합 때문에 선량한 또 다른 사회적 약자는 죽으라고?
사회적 대통합이 무엇인가? 소외받는 계층이 상실감을 느끼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울려 살만한 교육이 되지 않고,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 피해를 준다면 이건 대통합이 아니라 폭력을 키우는 겉치례일 뿐이다.
왜 우리 아이들이 특수보호 대상자들에게 피해를 입으며 초등학교에 다녀야 합니까? 왜 불결하고 더러운 냄새를 맡으며 그 학교에 다니고, 얻어 맞아도 쉬쉬하면서 담임 선생님의 조치만 기약없이 기다려야 합니까? OO지차체 교유감님, 감자나 심을까요? 그냥 감자나 심고 캐면서 세월과 함께 고통을 삭혀야 하는게 맞는걸까요?
교과부는 분명한 대책을 내 놓아야 한다. 도 교육청 실무자와 상담한 결과 직접 본인의 입으로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고 말이다. 그저 귀댁의 자녀가 그 특수아동들의 손아귀에서 고통받고 함께 묻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학교 폭력은 중고등학교에서 심화되는 것이 아니다. 어려서 습관화 된 폭력과 이를 방치하는 교육 시스템이 폭력을 키우고 더욱 심각한 문제로 만드는 것이다. 이 글을 제발 교육에 관련된 우두머리들이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